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광해군 - 한명기의 <광해군>의 서문중에서
광해군을 쫒아낸 사람들, 그에게 '혼주'란 이름을 붙여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1630년 겨울,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을 받는다. 이듬해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세번 큰 절을 올리고, 한 번 절할 때마다 이마를 세 번씩 조아리는 가장 치욕적인 항복 의식이었다. 이윽고 맏아들 소현세자와 둘째아들 봉림대군이 만주로 끌로가고 수만의 포로가 조선을 등져야 했다. 국왕이 그 치욕을 당하고 수만의 생령이 '도마 위의 고기'가 되기까지 쿠테타를 주도했던 공신등을 대부분 멀쩡했다. 그들은 정권을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를 보위하는 데는 실패했다. 명과 후금을 구슬려 전쟁을 막고자 했단 광해군을 '패륜아'라고 욕했던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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